영상 스태프를 위한 '일하는 사람 기본법' 완벽 해석
"내 계약서에 '용역계약서'라고 적혀 있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죠." 영화·영상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거예요. 대부분의 스태프가 3.3% 원천징수 방식으로 계약하고, 근로계약서 대신 위임·용역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관행이 업계 전반에 자리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이 관행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법 두 가지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어요. 바로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입니다. 영상 스태프에게 이 법들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 조문 해석이 아니라 "내 현장에서는 뭐가 달라지나" 관점으로 같이 살펴볼게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란 — 핵심만 빠르게
이 법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계약 형식과 무관하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일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 모두를 보호하는 법." 고용노동부는 2026년 1월 이 법의 제정 방침을 공식화했고, 22대 국회에서는 김태선·이용우·장철민·김주영·박홍배 의원 등이 각각 법안을 발의해 현재 상임위 심사 단계에 있습니다. (문화일보, 2026.01.20)
보호 대상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정규직, 비정규직, 프리랜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방송작가, 영화 스태프도 분명하게 적용 범위에 들어가고요. 자기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자영업자만 제외됩니다.
법안이 보장하려는 권리는 크게 여덟 가지입니다.
- 최저임금 보장
- 4대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적용
- 퇴직금(퇴직급여) 지급
- 주휴수당 보장
- 안전·건강 보호
- 공정한 계약 체결 권리(서면 계약 교부 의무, 합리적 이유 없는 계약 변경·해지 제한)
- 성희롱·괴롭힘 금지
- 손해배상청구권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릴 것도 있어요. 이 법은 '기본법' 형태라서 선언적 성격이 강합니다. 많은 조항이 사업주의 "노력" 의무로만 규정되어 있고,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수단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거든요. 노동변호사 윤지영은 매일노동뉴스에서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노동계에서 "알맹이 빠진 선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죠.
그래서 오히려 함께 추진되는 '근로자 추정제'가 실무적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변화 — 근로자 추정제와 입증 책임의 역전
근로자 추정제는 근로기준법 제104조의2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1일 노동절 시행을 목표로 했는데, 2026년 5월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는 최종 확인이 필요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어요.
핵심 변화는 이렇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근로자임을 내가 증명" 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당신이 근로자가 아님을 회사가 반증" 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면, 그 사람은 우선 근로자로 추정됩니다. 만약 사업주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도 부과됩니다.
영상 스태프에게 주는 의미가 큽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스태프는 "나는 근로자다"를 굳이 소명하지 않아도 돼요. 콜시트, 카카오톡 호출 기록처럼 "이 현장에서 일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됩니다. 입증 부담이 스태프에서 제작사로 전환되는 거죠.
이미 법원과 고용노동부도 영상·방송업계에서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어요. 방송3사 근로감독 결과,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KBS 70명, MBC 33명, SBS 49명)의 근로자성이 인정됐습니다.(아웃소싱타임스) 법원도 "제작업무는 공동 목표를 위해 유기적으로 결합하므로 제작사의 지속적 지휘·감독이 이루어진다"고 판단하며 영화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사례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근로자 추정제 적용 범위는 임금·퇴직금 청구, 징계·해고 무효확인, 손해배상 청구 등 근로기준법 관련 민사 분쟁이에요. 형사 처벌 영역은 아니지만, 분쟁의 무게중심 자체가 바뀌는 변화입니다.
내 현장에서는 뭐가 달라질까 — 유형별 시나리오
법 조문보다는 "내 상황에 대입하면 어떨까?"가 더 와닿을 텐데요. 대표적인 네 가지 시나리오로 풀어볼게요.
시나리오 A — 촬영팀 2개월 풀타임 스태프
지금은 3.3% 프리랜서 계약이라 4대보험·퇴직금·주휴수당이 없어요. 근로자 추정제가 시행되면, 분쟁 발생 시 "나 이 현장에서 일했어요"라는 사실만 입증하면 4대보험 소급 가입과 퇴직금 청구 가능성이 생깁니다. 여기에 일하는 사람 기본법까지 시행되면 공정계약·안전보건 보호도 추가로 적용되는 셈이죠.
시나리오 B — 저예산 단편·OTT 신참 스태프
영진위 2024 실태조사 기준, 신참급 스태프 시급은 9,679원이에요. 2026년 법정 최저임금 10,320원에 미달하는 수치입니다. 지금은 프리랜서 계약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아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시행되면 이 차액에 대해 청구 근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실효성 있는 구제가 되려면 별도 절차 마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에요.
시나리오 C — 연간 3~4편 참여하는 프리랜서 조명감독
예술인 고용보험은 2020년부터 이미 가입 가능합니다. 근로자 추정제 시행 후에는 작품별 제작사와의 분쟁에서 훨씬 유리한 입장이 돼요. 퇴직급여 적용 여부는 개별 법 개정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라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시나리오 D — 영진위 지원작 표준근로계약서 적용 스태프
이미 4대보험·주 40시간 원칙·연장수당이 적용되어 있어서, 법 시행에 따른 추가 충격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다만 프리프로덕션·포스트프로덕션 단계의 계약 공백은 여전히 점검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영화 스태프의 본제작 기간 월평균 근로시간은 286.7시간이고, 소품팀은 330.4시간에 달한다는 데이터도 있어요.(영진위 2024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법정 주 52시간 기준 월 226시간을 훌쩍 넘는 현장이 다수라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 챙기는 실무 체크리스트
법 시행 시점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부터 챙길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① 계약 시 확인
- 계약서 종류 확인: 근로계약서인지 위임·용역계약서인지 먼저 파악하세요. 위임·용역(3.3%)계약이어도 실질이 근로관계라면 근로자 추정제 활용이 가능합니다.
- 임금 항목: 연장근로수당·야간수당·휴일수당이 별도로 명시되어 있는지 확인하세요.
- 계약 기간: 프리프로덕션·포스트프로덕션 단계도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보시는 게 좋아요.
- 4대보험·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여부와 방식을 미리 확인해두시면 든든합니다.
② 매일 남겨두는 기록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 기록들이 핵심 증거가 됩니다.
- 콜시트·카카오톡 호출 메시지: 날짜와 시간이 담긴 기록 보관
- 현장 출입 내역: 가능하다면 사진이나 스크린샷으로 남겨두기
- 업무 지시 캡처: 문자·메시지·이메일로 받은 업무 지시는 그대로 보관
- 통장 입금 내역: 지급 날짜, 금액, 입금자명 보존
- 초과근로 기록: 호출 시간~퇴근 시간을 메모 앱이나 엑셀에 기록
근로자 추정제 활용 시, 이 자료들이 "노무 제공 사실 입증"의 핵심 증거가 됩니다.
③ 분쟁 발생 시 1·2·3단계 대응
1단계는 고용노동부 노동포털(labor.moel.go.kr)에 임금체불 진정을 접수하는 거예요. 처리기간은 약 25일이고, 체불이 확정되면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2025년 10월부터는 재직 중인 상태에서 발생한 체불임금에도 연 20% 지연이자가 발생하는 제도가 시행됐어요.
2단계는 근로자성 다투기입니다. 추정제 시행 후에는 "노무 제공 사실"만 입증하면 제작사가 반증 책임을 지게 됩니다.
3단계로는 소액사건심판(3,000만원 이하)을 활용하거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한국방송스태프협회를 통해 단체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어요.
마무리 — 법보다 먼저 움직이는 기록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영상 스태프처럼 프리랜서·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는 분들에게 최저임금·4대보험·퇴직금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줄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기본법이라는 선언적 한계가 있어서, 실제 분쟁 현장에서 더 강하게 작용하는 건 함께 추진되는 '근로자 추정제'입니다.
그러니까 법 시행 시점만 기다리기보다는, 지금부터 계약서·근로시간·업무 지시 기록을 차곡차곡 남겨두는 습관을 들이시는 게 가장 실용적인 권리 보호 방법이에요. 오늘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계약서를 꺼내서 ① 계약 명칭, ② 임금 항목, ③ 4대보험 조항, ④ 계약 기간, 이렇게 네 가지만 확인해보세요. 5분이면 충분합니다.
법이 우리를 지켜주기 전에, 우리 기록이 우리를 먼저 지켜준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상 업계에서 표준근로계약서·4대보험 가입이 잘 지켜지는 프로젝트를 찾고 계시거나, 새로운 작품 합류를 고민 중이시라면 스태핑브릿지(StaffingBridge)에서 영화·영상 현장의 다양한 구인 정보를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 그 시작은 좋은 현장을 만나는 일이니까요.
이 글은 스태핑브릿지(StaffingBridge)에서 제공하는 영화/영상 업계 인사이트입니다.
참고 자료
- 대리기사·보험설계사·캐디도 4대보험·퇴직금 등 보장 받는다…'일하는 사람 기본법' 추진 — 문화일보, 2026-01-20
- 2026년 달라지는 노동 관련 법 제도 — 법무법인 지평, 2026-01-20
- 영화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발표 및 4대 보험 의무화 — 영화진흥위원회, 2011-05-24
- 노동자성 '사용자 입증' 시대로 — 아웃소싱타임스
-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2024 — 영화진흥위원회, 2024
- '일하는 사람 기본법' 윤곽, 노동계 "알맹이 빠진 법" —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