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영화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있어도 12시간 일하는 5가지 이유

2026-05-22
8분 읽기
새벽까지 조명이 켜진 영화 촬영 현장, 카메라와 조명 장비가 늘어선 야간 세트장

"표준근로계약서까지 썼는데 왜 현장에서는 하루 12시간씩 일하게 될까요?"

영화 스태프라면 한 번쯤 이 질문을 품어봤을 거예요. 영화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가 현장에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2024년 기준 영화 본제작 기간 스태프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286.7시간으로 법정 상한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8시간 기준이 적혀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영화 현장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계약서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계약서는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니거든요. 오늘은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표준계약서가 현장을 바꿔놓은 건 사실이에요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은 영화 현장을 실질적으로 바꿨어요.

2014년 이전에는 '통계약'이라 불리는 도급 방식이 지배적이었어요. 팀장이 제작사로부터 일괄금액을 받아 팀원에게 임의로 나눠주는 구조였고, 4대 보험은 물론 계약기간 명시도 없었습니다. 초과수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셈이죠.

표준계약서 도입 이후 상황은 달라졌어요. 계약기간이 명시됐고, 월급제로 전환됐으며, 8시간 초과 시 1.5배·12시간 초과 시 2배 지급이 명문화됐습니다. 4대 보험 적용과 회차 간 휴식 보장 조항도 생겼어요.

수치로도 변화가 보여요.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서 체결 경험이 2019년 76.4%에서 2020년 83.9%까지 높아졌고, 구두 계약 비율은 2014년 14.5%에서 2022년 1.3%로 급감했습니다(출처: 노컷뉴스). 부정할 수 없는 성과이죠.

그런데 장시간 노동은 왜 줄지 않았을까요?


시계는 여전히 멈추지 않아요 — 숫자로 본 현실

촬영 세트장 시계와 카메라 장비, 야간 촬영 준비 중인 영화 스태프들

영화진흥위원회가 2025년 발간한 실태조사(2024년 기준) 수치를 보면 현실이 또렷해집니다.

영화 본제작 기간 스태프는 월평균 286.7시간을 일하고 있어요. 소품팀은 무려 330.4시간입니다(출처: 한국경제, 2025-10-28). 일평균 12.3시간, 주 5.33일, 주 57.1시간 — 법정 52시간 기준을 훌쩍 넘는 수준이죠.

가장 큰 작업 위험요소로 수면 부족(46.9%) 이 꼽혔고, 폭염·추위(44.3%), 무거운 물건 운반(41.5%)이 뒤를 잇습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출퇴근 시간 포함 16시간 집 밖에 머물러야 하고, 남은 8시간 동안 밥 먹고 씻고 자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드라마·OTT 현장은 더 심각합니다. OTT 현장의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 비율은 **37%**로 영화(17%)의 두 배에 달하고(출처: 미디어오늘), 구두 계약 비율도 영화(1.3%) 대비 10배 이상인 15%를 기록하고 있어요.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요? 이유는 구조에 있습니다.


계약서가 있어도 12시간 일하게 되는 5가지 이유

영화 제작 계약서 서류를 검토하는 스태프의 손, 촬영 현장 배경

① 포괄임금제 — 초과근무를 해도 제작사엔 추가 비용이 없어요

영화·드라마 현장 대부분은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구분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쓰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스태프가 야간근무를 아무리 많이 해도 제작사 입장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요. 초과근로를 방치하거나 암묵적으로 조장할 유인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법무법인 변호사들은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은 촬영 시작·종료 시각 내에 실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므로 포괄임금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출처: 미디어스). 법적으로는 위반임에도 현장에서는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 셈이죠.

② 준비·이동·정리 시간이 계약서 밖이에요

촬영 '외' 시간은 어떻게 될까요? 현장으로 이동하는 시간, 세트 준비, 장비 정리 — 이 시간들이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거나 불분명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태프들이 "촬영 시간 이외에도 업무가 있다는 걸 인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출처: 노컷뉴스).

여기에 인원 배치 부족 문제가 겹칩니다. 미술팀·소품팀처럼 구조적으로 근로시간이 긴 부서에도 제작사는 인원을 최소화해 1인당 부담이 과중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③ 드라마·OTT는 계약서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 현장이 표준계약서 보급률 83.9%를 기록하는 동안, 드라마·OTT 현장은 다른 세계였습니다. 미디어스가 드라마 8편을 검토한 결과, 8편 전부 표준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어요(출처: 미디어스, 2026-05-22). 대신 '업무위탁계약서', '하도급 계약서'라는 이름으로 근로기준법 적용 자체를 피해가는 구조입니다.

이 계약서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된 위법 조항들이 있어요:

  • 불특정 계약기간: 제작사가 임의로 계약 종료 가능
  • 포괄임금 적용: 기본임금 산정 없이 수당 포함 일괄 지급
  • 근로시간 미규정: 시작·종료 시각, 이동·준비시간 정의 없음
  • 유급휴일·연차 조항 자체 부재
  • 위약금 조항: "귀책 사유 발생 시 용역료 2배 지급" — 근로기준법 제20조 위반
  • 4대 보험 가입 책임을 감독급 스태프에 전가

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보인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④ 일자리가 줄어 협상력이 무너졌어요

코로나 이후 극장 관객 감소와 영화 제작 위축으로 스태프 일자리가 급감했어요. 영화 한 편 참여 수익이 2022년 1,781만 원에서 2024년 1,489만 원으로 16% 감소했고(출처: 한국경제, 2025-10-28), 제작사는 "너 아니어도 사람 구할 수 있어"라는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됐습니다.

초과근무를 거부하거나 임금 위반을 신고하면 다음 현장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스태프들의 협상력은 사실상 무너진 상태예요. 고용 외주화 비율도 2011년 8.3%에서 2022년 24%로 3배 증가하면서(출처: 미디어오늘), 외주 인력일수록 초과근무 거부가 더 어려운 구조가 굳어졌습니다.

⑤ OTT는 법적 분류 자체가 공백이에요

OTT 시리즈는 영화비디오법에도, 방송법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법적 분류 자체가 없다 보니 단체교섭이나 노사정협의체 같은 보호 장치가 전무한 상태예요. 제작 현장 관계자는 "모든 시리즈에 근로계약은 없다고 보도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출처: 참여와혁신).


2026년, 조금씩 바뀌고 있는 흐름

모든 게 제자리인 것은 아닙니다. 최근 흐름을 보면 변화의 조짐이 보이거든요.

고용노동부는 2026년 4월 8일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발표하고, 영상·콘텐츠 등 청년 다수 고용 사업장 약 100곳에 대한 기획감독에 착수했습니다. 임금대장에 기본급과 수당을 반드시 구분 기재하고, 실제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을 기록하도록 의무화한 거예요. 시행 후 익명신고센터 신고 건수가 42건으로 전년 동기(13건) 대비 3배 이상 늘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방송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선례가 나왔어요. 2026년 1월 고용노동부가 KBS·SBS 등 6개 방송사 대상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프리랜서 663명 중 216명(32.6%)의 근로자성을 인정했습니다(출처: 경향신문, 2026-01).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 선례가 생긴 셈이죠.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8개 단체도 2026년 4월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 제안서를 발표하며 제도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근무 기록을 노트에 작성하는 영화 스태프의 손, 계약서와 펜이 놓인 책상

구조적 문제는 제도가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어요.

계약서 명칭과 내용을 먼저 확인하세요. '업무위탁계약서', '하도급 계약서' 명칭이 붙은 계약은 근로기준법 보호 밖으로 밀려날 수 있어요. 계약 전에 명칭과 포괄임금 여부, 근로시간 정의 조항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세요. 출퇴근 기록, 카카오톡 업무지시 내역, 근무 일지 — 이 자료들이 나중에 초과수당이나 임금체불 문제가 생겼을 때 핵심 증거가 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채널도 있어요:

  • 영화인신문고(sinmungo.kr):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기관. 임금체불, 표준계약서 관련 상담 가능
  • 고용노동부 진정: 관할 고용노동청에 진정 제기 후 사실조사 → 지급 명령
  • 포괄임금 익명신고센터: 고용노동부 운영, 익명으로 신고 가능
  • 노조 가입: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가입으로 단체협약 보호 범위 내 교섭력 확보

마무리하며

표준근로계약서는 영화 현장을 분명히 바꿔놨습니다. 그 성과를 가볍게 봐선 안 되죠. 하지만 계약서가 존재한다고 해서 현장의 장시간 노동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포괄임금제, 업무위탁계약이라는 명칭 편법, 드라마·OTT의 법적 사각지대, 일자리 감소로 인한 협상력 붕괴 — 이 구조를 알면, 내가 어디서 보호받고 어디서 밀려나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현장 계약서를 받으면 명칭부터 확인하고,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그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게 있을 거예요.

영화·영상 업계의 표준근로계약 기반 구인 정보를 찾고 있다면, 스태핑브릿지(StaffingBridge)에서 확인해보세요. 계약 조건이 명시된 현장 정보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스태핑브릿지(StaffingBridge)에서 제공하는 영화/영상 업계 인사이트입니다.

참고 자료